- 아버지와 아들이 나란히 솥 앞에 선 지 30년, 화북공단 노동자들의 든든한 한 끼를 지켜왔다. 맑은 국물에 다데기를 풀어 두 번 맛보는 순댓국, 순대국수 — 이 집 순대는 두 그릇으로 완성된다.
[제주 노포 열전] 네 번째 이야기 — 화북공단 골목, 30년째 자리를 지켜온 부자(父子)의 국숫집을 찾았다.
공장 셔틀버스가 지나가고 지게차 소리가 골목을 채우는 화북공단. 이곳 한켠에 '다맛국수'가 있다. 간판에는 "Since 1996"이 선명하다. 30년 가까이 이 자리에서 아버지와 아들이 대를 이어 국수를 말아온 집이다. 순대백반과 순대국수, 두 그릇이 이 집의 전부이자 전력이다.

▲ 화북공단 골목의 다맛국수 옛 간판 ⓒ 탐라뉴스
◆ 공단 골목, 30년 부자의 자리
화북공단은 흔히 공장만 있는 곳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런 지역일수록 오래된 밥집이 버티고 있는 경우가 많다. 출퇴근하는 노동자들의 끼니를 책임져야 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다맛국수는 그 역할을 30년 가까이 해온 곳이다.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주방을 지킨다는 점은 이 집을 단순한 노포 이상으로 만든다. 손맛이 대를 건너 이어진다는 것은, 조리법만이 아니라 이 자리를 지키겠다는 감각까지 함께 물려받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공장만 있는 줄 알았던 골목에, 30년째 부자가 지키는 국숫집이 있었다.
◆ 처음 보는 국물, 반투명한 첫인상
자리에 앉아 국밥을 받아 든 순간, 가장 먼저 눈을 붙잡는 것은 국물의 색이다. 흔히 알던 순대국밥의 뽀얗거나 붉은 국물이 아니라, 반투명에 가까울 만큼 맑다. 제주에서 여러 순대국밥집을 다녀봤다 해도 좀처럼 마주치기 힘든 비주얼이다.

이 집은 국밥을 토렴 방식으로 낸다. 뜨거운 육수를 밥과 내장에 여러 차례 부었다 따라내며 온도를 서서히 끌어올리는, 손이 많이 가는 옛 조리법이다. 급하게 끓여 붓는 국밥과 달리, 밥알 하나하나까지 온기가 고르게 스며든다.
◆ 국물을 두 번 맛보는 법
매운 양념(다데기)은 국물에 미리 풀려 나오지 않는다. 따로 종지에 담겨 나와, 손님이 직접 넣는 양과 시점을 정할 수 있다. 실제로 다데기를 넣지 않은 채로 국밥을 반쯤 비우면, 맑은 국물 본연의 담백한 맛을 먼저 느낄 수 있다.
그 다음 남은 절반에 다데기를 풀면, 같은 그릇이 완전히 다른 국밥으로 바뀐다. 이 집의 다데기는 국산이 아닌 중국산 고춧가루를 쓰지만, 오래 숙성된 특유의 향이 살아 있어 자극적이기보다 깊은 인상을 남긴다. 한 그릇으로 두 번 다른 맛을 보는 셈이다.

▲ 반쯤 비운 뒤 다데기를 덜어 국물 맛을 바꾼다 ⓒ 탐라뉴스
여기에 내장이 아낌없이 들어간다. 간, 염통, 허파, 콩팥 등 다양한 부위가 푸짐하게 올라오는 것은 제주 순대국밥집들의 공통된 특징이지만, 다맛국수는 그 구성이 유독 실하다는 평이 많다. 내장 특유의 잡내 없이 깔끔하게 삶아낸 손질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맛이다.

◆ 선지와 보릿가루 — 전통이 채소를 만나기까지
제주 전통 순대는 원래 밥이나 채소를 넣지 않았다. 선지에 보릿가루, 메밀가루, 다진 마늘과 파만 섞어 만드는 것이 본래 방식이었다. 돼지를 잡는 잔치나 상(喪)이 있을 때 만들어 먹던 음식이었기에, 음식이 쉽게 상하지 않도록 기름기를 최대한 줄인 것도 이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익숙하게 떠올리는, 채소가 듬뿍 들어간 순대는 사실 오래된 전통이 아니다. 30~40년 전부터 제주에서 채소 농사가 활발해지면서 비로소 순대 속에 채소가 섞이기 시작했다. 다맛국수의 순대 역시 이런 변화의 흐름 위에 있는 셈이지만, 선지와 곡물 위주의 옛 방식이 지닌 담백함은 여전히 짙게 남아 있다.
◆ 순대국수, 짬뽕을 닮았지만 다른 맛
순대백반만 먹고 돌아갔다면 아쉬울 뻔했다. 이 집 순대국수는 순대국밥과는 전혀 다른 결을 가졌다. 국물이 한결 가볍고 깔끔하며, 비주얼만 보면 얼큰한 짬뽕 국물을 떠올리게 하지만 실제로는 훨씬 담백하다.


▲ 순대국수 — 맑은 국물에 순대와 면이 넉넉하다 ⓒ 탐라뉴스
국수 위에도 순대가 푸짐하게 올라간다. 제주 하면 흔히 떠올리는 고기국수와는 분명히 다른 갈래의 한 그릇이다. 순댓국과 순대국수, 어느 하나도 포기하기 어렵다는 평이 나오는 이유다.
◆ 사라진 메뉴, 소내장탕의 기억
지금은 메뉴판에서 내려간 음식이 하나 있다. 소내장탕이다. 뚝배기 속에서 국물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던 그 한 그릇은, 순댓국과는 또 다른 결의 별미였다.


▲ 지금은 사라진 메뉴, 소내장탕 ⓒ 탐라뉴스
낮술로 곁들인 소주 한 잔과 함께였던 그 시절의 기억은 지금도 선명하다. 메뉴에서 사라졌다는 사실이 못내 아쉬운 이유다. 노포의 세월이 길어지는 동안, 자리를 지킨 메뉴가 있는 만큼 조용히 사라진 메뉴도 있다는 것을 소내장탕이 말해준다.
◆ 옮겨진 간판, 남겨진 온기
다맛국수의 원래 간판은 지금 자리가 아니라 근처 다른 건물에 붙어 있었다고 한다. 지금은 그 옛 간판이 자리를 옮겨 다른 건물에 걸려 있고, 정작 식당은 새 자리에서 영업을 이어가는 중이다. 오래 다닌 손님이라면 지나치다 헷갈릴 법한, 작지만 분명한 이전의 흔적이다.


▲ 새로 걸린 간판엔 "Since 1996"이 새겨져 있다 ⓒ 탐라뉴스
밑반찬은 화려하지 않다. 그러나 곁들여 나오는 깍두기는 유독 아삭하고 시원해, 진한 국물 사이사이 입을 가볍게 씻어주는 역할을 한다. 식사를 마친 뒤에는 셀프로 따뜻한 커피 한 잔을 챙겨 마실 수 있다. 큰 장식 없이도 손님을 배웅하는 나름의 방식이다.
다만 주차는 넉넉하지 않다. 공단 골목이라는 입지 특성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지만, 처음 찾는 이라면 미리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 위치: 제주 제주시 선반로6길 21 1층 (제주 화북공단 내 위치)
▶ 영업시간: 08:00 ~ 15:00 (매주 일요일 휴무)
▶ 전화번호: 756-1101
▶ 대표메뉴: 순대백반, 순대국수, 고기국수
▶ 주차: 협소, 인근 골목 주차 이용
BEST 뉴스
-
제주 노형동 "소인커피"...호주식 커피와 수제 디저트의 만남
탐라뉴스 · 현장취재 제주 노형동 골목에서 만난 커피의 여유…소인커피, 호주 멜버른 감성으로 눈길 호주식 커피와 수제 디저트의 조화…다양한 메뉴와 밝은 분위기로 즐기는 카페의 여유 제주시 노형동에 자리한 소인커피(Soin Cof... -
인제에 새로 오픈한 "태하숯불갈비" 다녀오다
인제에 갈비집이 새로 오픈하였다. 숯불갈비와 냉면 무료라고 써진 환한 간판이 지나가는 사람의 시선을 끌게 만들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매장은 그리 넓지 않지만 4인석 테이블이 꽉 채워져 있었다. 메인 메뉴는 ... -
제주시청 밤거리의 오래된 온기, 30년 이어온 닭고기·떡꼬치 전문점
허름한 간판, 그 너머로 번지는 구수한 향기 노포의 느낌을 가득 담은 허름한 간판에는 '베리굿'이라는 글씨가 흐릿하게 남아있다. 하지만 그 너머로 보이는 붉은색과 흰색 줄무늬 차양과 그 아래 놓인 메뉴판은 여전히 밤새 꺼지지 않는 활기를 담고 있다. 늦은 밤, 출출함을 채우려 모여든 사람들... -
제주 양식 맛집 찾는다면? 구남동 ‘루딕(ludic)’
제주시 구남동에 자리한 양식 레스토랑 '루딕(ludic)'을 찾았다. 피자와 파스타를 비롯해 리조또, 샐러드 등 다양한 메뉴를 갖춘 곳으로, 점심 식사부터 저녁 식사, 데이트와 모임 장소로 좋은 분위기를 갖추고 있다. 루딕은 제주시 구남동2길에 위치한 매장으로, 외관부터 일반적인 식당보다는 감각... -
밤하늘을 밝히는 감성 공간, '해동 별한곳'을 가다
해동(海東): 비취빛 물결이 영롱하게 이는 바다 마을. 제주시 조천읍 북촌리의 호젓한 바닷가 골목, 동남아 휴양지의 한가로운 밤을 떠올리게 하는 이국적이면서도 다정한 감성 아지트 '해동별한곳'을 찾았다. 어두운 밤거리를 걷다 보면 따뜻한 빛으로 발길을 사로... -
“이 계절엔 삼치회”…제주 일도촌 찾았더니 손님들이 찾는 이유 있었다
제주에서 회를 떠올리면 광어와 참돔, 고등어회 등을 먼저 생각하기 쉽지만, 제철을 맞은 삼치 역시 제주 바다에서 만날 수 있는 별미다. 일도동에서 삼치 맛집으로 인기가 있었던 일도촌 본점이 자리를 옮겨 그 근처 2호점 자리에 최근 오픈하였다. 매장 내...

